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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의사 (와까야나기)
  글쓴이 : 미야기     날짜 : 09-08-26 17:03     조회 : 5621    


안중근의사
(1879.9.2~1910.3.26)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초대통감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당시 30세)는 여순감옥에 투옥된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간수를 담당한 사람은 치바토시치(당시 25세)라는 일본인 청년. 민족독립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간절한 염원과 인격에 감동한 치바토시치는 간수와 죄수라는 관계, 국적의 차이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안중근 의사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1910년 3월 26일 사형장에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같은 군인 출신이었던 치바에게 그의 생전 마지막 글을 써주었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치바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묵서(墨書)를 불단에 바치고 명복을 빌면서 한일 양국의 친선과 평화를 염원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유족들은 이 글을 1979년 안중근 의사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치바토시치가 잠든 다이린지에서는 이 일을 기념하고 안중근 의사와 치바의 아름다운 우정을 기리기 위해 1981년 3월 26일 현창비(顯彰碑)를 건립하였다. 사찰 본당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의 영정, 안의사의 묵서 사본이 걸려 있다.


현창비


치바토시치

 

 


다이린지 전경 


안중근의사와 치바토시치의 영정